우리나라 교육에서 가장 관심이 높은 하나의 대상을 꼽으라면 단연 대학입시일 거고, 대학입시가 그렇게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아마도 엄연히 존재하는 대학 서열 때문일 겁니다. 이 서열은 입학생들의 성적 순으로 매긴 순서이겠지요. 그런데 대학 서열이 문제가 될까요? 문제라면 그게 과연 무얼까요?
명문대를 정점으로 한 서열구조는 우리 사회의 역동성을 제약하고 공교육 붕괴를 초래하는 사교육 문제의 근원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경제학 용어를 좀 쓰자면 대학서열을 보는 시각은 두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대학 서열이 대학 간 경쟁을 유도하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고착화된 서열이 오히려 대학 간 경쟁을 촉진시키는 게 아니라 대학의 노력과 무관한 선호를 만들어서 대학교육 발전에 부정적이라는 것이지요.
저는 노동시장에서 과연 대학 서열이 어떻게 평가되는지가 무엇보다 궁금했습니다. 그러니까 출신대학에 따라 과연 임금이 크게 차이가 나는지가 궁금했던 것이지요. 그런 연구를 할 수 있는 자료가 2005년 경에 나왔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출신대학별 노동시장의 성과를 볼 수 있는 자료는 있었지만 출신 학과의 수학능력점수까지 알 수 있는 자료는 2003년도 대학 졸업생들의 2005년 임금을 보여주는 자료가 처음이었습니다.
왜 수능 점수가 필요했을까요? 그건 수능점수가 능력과 성실도를 결합한, 나름 의미있는 측정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점수를 무시하고 대학별 임금 차이만 살펴보는 것이 대학 서열의 효과를 살펴보는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서열의 효과라면 같은 능력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학교가 다름으로 해서 차이가 날 때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분석을 진행했는데 몇 가지 주목되는 결과를 살펴보면, 우선 수능백분위 점수가 1점 오를 때 임금이 0.2%p 정도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차이냐를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평균적으로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는 수능점수가 그렇게 평가되고 있는 겁니다.
이제 정말 수능 점수를 받고도 출신 대학에 따라 임금이 다른지를 살펴보면 정말 그렇게 나타납니다. 만약 수능점수가 같음에도 불구하고 다녔던 대학에 따라 임금이 달라진다면 이를 “서열의 임금 프리미엄”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겁니다. 분석 결과는 수능점수를 감안하더라도 상위 5~10개교의 임금 프리미엄은 7%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명문대학에 다니지 않는다고 해서 이런 결과에 좌절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학 졸업 후 얼마안된 시점에 대학졸업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소득불평등 중에서 얼마만큼이 소속대학의 차이 때문에 오는 것이며 얼마만큼이 같은 학교 내에서 보이는 차이인지를 나누어 보면 학교 내 불평등이 전체 불평등의 88%이고 학교 간 불평등은 약 12%로 나타나 출신 대학의 서열이 개인의 숙명은 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대학에서 임금 순위 상위 25% 내에 드는 사람들끼리 비교해 보면 대학의 서열과 임금 사이에는 별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사실 이 연구는 해답보다는 더 많은 질문을 던져주었습니다. 가장 먼저 떠 오른 질문은 과연 이런 격차가 시간이 지나면서 확대될 것인가 줄어들 것인가 하는 거였지요.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이런 거였습니다. “노동시장에 진입할 당시, 혹은 진입 초기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므로 자신이 다닌 대학이라는 정보가 중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력이 쌓여갈수록 자신을 증명해 가면 대학 서열로 인한 프리미엄은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생각의 진위를 검토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 뒤에 새로운 데이터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자료에서는 1982년에 졸업한 사람들과 1992년에 졸업한 사람들, 그리고 2002년에 졸업한 사람들이 2009년의 임금 자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대략 “본고사 세대”, “학력고사 세대” 그리고 “수능세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자료를 검토한 결과는 매우 흥미롭게도 서열의 효과가 세대 별로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위 세대에서는 서열의 효과가 나이가 들면서 점차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수능세대에서 만큼은 서열의 효과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학력고사 세대에서는 점수가 동일하다고 할 때에도 학교의 서열 때문에 임금이 달라지는 현상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비해, 수능세대에서는 같은 입학 점수에도 불구하고 다녔던 대학에 따라 임금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자기가 다녔던 대학의 순위가 1계단 떨어지면 임금이 약 0.4%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분석을 해 보면 좋은 대학에 들어갈 이유가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대학 0.4%가 그렇게 큰 차이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100개 대학이 있다고 할 때 가장 높은 순위의 대학과 가장 낮은 순위 대학의 차이가 40% 나는 것이니 그건 나름 큰 차이가 다고 볼 수 있겠으나, 0.4%가 그렇게 큰 차이일까요? 제가 보기는 학벌에 대한 집착은 적어도 임금 면에서는 그리 정당화되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
좀 민감한 주제를 이야기했는데, 대학서열과 임금 사이의 관계는 대학서열과 관련된 주제의 극히 일부일 뿐이지만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래서 대학 서열 문제는 반드시 노동시장과 관련해서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노동시장에서 실력대로, 더 나가서는 사회에 기여하는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명한 대학 나오는 게 인생의 목표가 된다면 정말 허망한 거 아닐까요? 우리 아이들이 좀 더 나은 목표를 가지고 대학 너머의 인생을 생각하며 살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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