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관심사

편집숍 전성시대

더 이상 물건을 파는 시대가 아니라, 취향과 안목을 파는 시대입니다. 이 명제에 가장 부합하는 곳이 편집샵입니다. 오늘은 편집숍이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편집샵을 비롯한 취향 큐레이션이 왜 점점 중요해지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편집숍(Select shop)은 컨셉 스토어(Concept Store) 라고도 합니다. 브랜드의 시대에서 컨셉의 시대, 취향과 안목의 시대로 진화하면서 편집숍은 점점 대중화되고 있습니다. 처음엔 패션 피플들이나 트렌드 세터들만 가던 유명하고 비싼 편집숍만 있었다면, 지금은 새롭게 핫플레이스가 된 동네에 가면 한구석 무심히 들어선 조그만 편집숍들을 마주치는 것도 다반사입니다.

 

리빙-편집숍
리빙 편집숍

편집숍은 하나의 공간에서 여러 브랜드의 제품들을 파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백화점이 아주 큰 건물에서 각기 브랜드별 매장을 다 입점시켜놓고 판다면, 편집숍은 하나의 매장 안에 브랜드 구분 없이, 브랜드가 아닌 제품 자체의 스타일과 취향을 강조합니다. 유명하든 무명이든 상관없이 매력적인 물건을 파는 것인데, 편집숍의 운영자가 어떤 취향과 안목을 가지고 물건을 골랐는지가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옷부터 리빙용품이나 문구, 디지털 디바이스나 음반, 책 등 팔 수 있는 물건의 장르에 제한도 없습니다. 편집숍이 추구하는 가치와 컨셉에 부합하고,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라면 매입해와서 팝니다. 쇼핑하러 가기 전에 무엇을 사야지 작정한 것들만 사는 게 아니라 예상치도 못한 것을 발견하고 사오기도 합니다.

 

사실 편집숍은 물건의 가치보다 취향과 안목에 가치를 매기는 매장입니다. 분명 그 물건을 다른 데서 내가 찾아서 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는 것보다 편집숍이 그 과정을 대신해 내 취향에 맞는 물건을 제안해주는걸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취향과 안목이란 게 모든 사람이 똑같지 않기 때문에, 안목 좋은 편집숍이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멋진 물건을 발견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의 안목을 돈 주고 사는 셈입니다.

 

2017년 12월 파리의 편집숍 꼴레뜨(Colette) 20년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세계적인 브랜드와 셀 수 없이 많은 콜라보레이션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매주 새로운 것들을 볼 수 있는 트렌드를 선도하는 곳이었는데요. 공식적인 폐점 사유는 꼴레뜨 루소(Colette Roussaux)의 은퇴입니다. 이걸 만든 사람입니다. 분명한 건 박수 칠 때 떠났습니다. 패션 중심의 편집숍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은 이곳을 시초라고 보기도 합니다. 파리에서 발견할 수 없는 것을 판다는 컨셉을 두고, 럭셔리 브랜드를 비롯 다양한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와 제품은 물론, 아트, 디자인, 뮤직, 잡지, IT기기, 음식 등 영역을 넓혀가며 자신들의 취향과 안목으로 물건을 큐레이션 했습니다. 이후 꼴레뜨는 파리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편집숍이 됩니다. 2층엔 갤러리를 만들고, 지하1층엔 워터바도 만들어 커피와 점심도 먹을 수 있게 했습니다. 다양한 이벤트나 워크샵도 상시적으로 열렸습니다. 쇼핑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이 되었던 것이고, 전세계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핫플레이스가 된 것입니다. 꼴레뜨는 사라졌지만, 꼴레뜨에 영향을 받은 이들에 의해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은 전세계에 계속 만들어집니다.

 

꼬르소꼬모
꼬르소 꼬모

편집숍 얘기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이 바로 10 꼬르소 꼬모(10 Corso Como)입니다. 1990년 밀라노 꼬모(Como)길 10번지에 패션 잡지 , 의 패션 에디터로 19년을 일했던 까를라 소짜니(Carla Sozzani)가 10 꼬르소 꼬모라는 세계 최초의 편집숍을 만들었습니다. 패션에디터 답게 편집숍이 살아있는 매거진처럼 눈앞에서 경험하는 패션 매거진을 만들어낸 것인데, 처음엔 사진을 중심으로 팔다가, 1991년부터 디자인과 패션 제품들을 팔고 순식간에 패션계의 핫플레이스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패션, 디자인, 아트, 라이프스타일, 책, 음악 등과 함께, 카페, 레스토랑, 객실이 3개뿐인 작은 호텔, 옥상정원 등 복합문화공간이자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이 되었습니다. 10 꼬르소 꼬모 이전까지 소매업은 파는 것을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리테일은 모르지만 콘텐츠를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리테일에서 콘텐츠가 중요해졌습니다.

 

그 콘텐츠를 만드는 능력이 바로 취향이자 안목입니다. 경험의 양이 취향의 다양성을, 그리고 이것이 쌓여 안목의 질을 만듭니다. 어떤 경험을 얼마나 충분히 누리며 사느냐는 취향과 안목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기도 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와 관계된 마케터, 기획자, 의사결정권자들은 경험을 소비하는데 돈과 시간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영국 상류층을 뜻하는 이 어퍼 클라스(Upper-Class) 문화에서는 돈보다 경험과 교양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런 가치관에서 품격있는 라이프스타일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VIP는 돈만 많은 사람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에서의 취향과 교양도 갖춰야 합니다. 물건 비싼 것만 산다고 되는 게 아닌 것이지요. 이제 취향과 경험에서의 럭셔리와 함께 자신만의 특별하고 유니크함을 원하는 이들이 급증했습니다. 의식주 모두에서 취향 큐레이션의 역할은 더더욱 중요해졌고, 편집숍의 가치 큐레이션의 가치는 더 높아졌습니다.

 

서울에도 꽤 많은 편집숍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핫플레이스라는 동네에 가면 꼭 있을 정도입니다. 앤티크이자 빈티지 물건들로 채운 편집숍도 있고, 뉴욕이나 도쿄의 편집숍을 연상시키는 곳들도 있습니다. 편집숍은 누군가에겐 취향 과시의 공간, 누군가에겐 취향 경험의 공간, 누군가에겐 진짜 원하는 물건을 효율적으로 살 수 있는 공간이 됩니다. 분명한 건 편집숍이 계속 늘어나고, 이들이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공간으로서 역할을 계속 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편집숍을 트렌드 거점으로 삼고, 이를 기반으로 비즈니스를 확장하려 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편집숍이 취향 큐레이션과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길 해드렸습니다. 편집샵이 만들어진 사례와 함께, 편집샵의 핵심이 취향이자 안목이고, 이것은 결국 리테일과 라이프스스타일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경쟁력이란 점을 말씀 드렸습니다.